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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인수' 배민, 시끄러운 잔칫집

나원식 기자 setisoul@bizwatch.co.kr 비즈니스워치

2019-12-19

기업가치 4 7500억원 '잭팟'…역대 최대

쿠팡 '일본계'로 저격하며 국적 논란 자초

배달앱 시장 독과점수수료 인상 우려도





"국내 1위 배달의민족, 세계 1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와 손잡고 아시아 시장 석권 나선다."

지난 13일 국내 배달 애플리케이션인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이런 제목의 보도자료를 보내왔습니다. 배민이 독일 배달업체와 손잡고 아시아 시장에 진출한다는 소식인데요. 이 독일 업체는 국내에서 요기요와 배달통을 운영하는 딜리버리히어로(이하 DH)라는 기업입니다. 국내 1, 2위 업체가 손잡고 해외 시장을 공략한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보도자료가 이런저런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배민의 아전인수 격 해석 때문인데요. 보도자료를 보면 DH가 우아한형제들의 전체 기업가치를 40억 달러(약 4조 7500억원)로 평가해 국내외 투자자 지분 87%를 인수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 보유 지분 13%는 추후 DH 본사 지분으로 전환된다고 합니다. 김 대표와 경영진이 DH의 주주가 되는 건데요.

이렇게 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DH가 우아한형제들 지분 100%를 사들였다고 하니 이제 우아한형제들은 DH의 100% 자회사가 됩니다. '자회사가 모기업과 손을 잡고 아시아 시장 석권에 나선다'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어색합니다. 통상 이럴 때는 모기업만 내세우곤 합니다. '(배달의 민족을 인수한) DH가 아시아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한다'라고 표현하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DH는 아시아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새 법인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딜리버리히어로가 50%, 김 대표 등 우아한형제들 경영진이 50%를 투자해 '우아DH아시아'라는 합작법인을 만들기로 했는데요. 김 대표는 이 신설 법인의 회장을 맡아 사업 전반을 총괄하게 되고요. 향후 아시아 시장 배달 앱 서비스에 '배달의민족'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우아한형제들 측은 아마 이 부분을 강조하면서 '손을 잡았다'라는 표현을 쓴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단순히 DH에 인수된 게 아니라 양측이 '파트너'가 된 모양새라고 주장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보더라도 정확한 표현은 아닐 겁니다. 김 대표는 이제 DH의 주주이자 경영진 중 한 사람입니다. 결국 새 법인을 만든 건 DH라는 그룹 내부에서 벌어진 일일뿐입니다. DH라는 기업이 우아한형제들이라는 다른 기업과 함께 파트너로서 손을 잡은 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 보도자료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내용이 또 있었습니다. DH가 독일 증시 상장사여서 이번 딜로 우아한형제들은 프랑크푸르트 증시에 상장한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됐다는 내용인데요. 사실 우아한형제들이라는 법인은 상장사의 자회사가 될 뿐입니다. 투자자들은 우아한형제들이 아니라 DH그룹 전체를 보고 투자할 겁니다. 상장사의 지분을 갖게 된 건 김 대표와 경영진이라는 개인들이고요. 이런 구조를 두고 '상장한 효과를 누렸다'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처럼 아리송한 내용들이 많은 보도자료를 발표하니 시중에서는 온갖 해석이 쏟아졌습니다. 보도자료에 포함된 문구를 인용해 '글로벌 연합군'이 탄생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고요. 매각이 아니라 합병에 가깝다고 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김 대표의 경우 DH 경영진 가운데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게 됐고 아시아 시장을 총괄하는 자리까지 맡았으니 결국 DH를 '접수'한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습니다.

아마 이런 해석들엔 토종 기업과 그 창업자가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은 '희망'이 담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사실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해석입니다. DH가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했고, 김 대표는 DH 경영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고 설명하는 게 가장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우아한형제들 측은 이번 보도자료에서 애꿎은 쿠팡을 끌어들여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우아한형제들은 "일본계 자본을 업은 C사(쿠팡)의 경우 각종 온라인 시장을 파괴하는 역할을 많이 해 왔다"라며 "국내외 거대 자본의 공격이 지속될 경우 자금력이 풍부하지 않은 토종 앱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라고 주장했는데요. 그러면서 "이 같은 위기감이 글로벌 연합군 결성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쿠팡의 최대주주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비전펀드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를 두고 쿠팡을 '일본계'로 저격한 셈입니다. 그러면서 배민의 경우 '글로벌 연합군'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손정의(왼쪽) 소프트뱅크 회장과 왼쪽) 소프트뱅크 회장과 김범석 쿠팡 대표. (사진=쿠팡 제공)

참 아쉬운 대목입니다. 굳이 사실 관계를 따지자면 쿠팡이 일본계라면 배민은 아프리카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아한형제들의 모기업이 된 DH의 최대주주는 내스퍼스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배민을 굳이 글로벌 연합군이라고 표현한다면, 쿠팡도 '글로벌 연합군'으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소프트뱅크비전펀드에는 일본계 자금뿐 아니라 아랍계 자본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 대표는 이번 딜을 발표한 직후 우아한형제들 직원들과 대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번 M&A의 배경에 대해 "한국서 출발한 스타트업을 국내 1위로 키운 뒤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느냐의 갈림길에서 일어난 딜"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결정이 그에게 쉽지 만은 않은 결단이었다는 점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이번 딜을 두고 국내 배달 앱 시장이 독일에 넘어갔다는 식의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해외 자금을 유치해 기업을 더욱 키우는 것은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쿠팡을 욕할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아한 형제들 역시 비판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국내 기업의 가치를 이 정도로 키워놨다는 점에서 칭찬받아 마땅할 일이죠.

또 배민 입장에서는 든든한 글로벌 업체를 등에 업게 됐습니다. 앞으로 세계시장에서 우리나라의 배달 서비스를 널리 알릴 기회를 얻게 되기도 했고요. 이처럼 긍정적인 면이 많은 일을 발표하면서 여러 논란을 스스로 불러일으켰다는 점이 더욱 아쉽습니다.

여기에다 독과점 논란도 낳고 있습니다. 배달앱 1, 2위 업체가 합쳤으니 당연히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요. 김 대표는 앞으로 DH가 국내 시장을 독점하게 됐으니 수수료가 인상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M&A를 했다고 수수료를 올리는 경영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자영업자들은 일단은 안도하면서도 이 기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는데요. 배민이 이런 약속을 잘 지키면서 더 큰 기업으로 커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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