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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극장]회장 딸과 내연녀의 진실게임

임명규 기자 seven@taxwatch.co.kr 택스워치

2019-02-19

내연녀, 동거·해외여행 '사실혼' 관계 주장
딸, 자필 교제 동의서 작성사실 전면 부인
감사원 "민법상 중혼 금지, 증여세 과세 타당"

"회장님! 이번 해외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고맙네. 자네 덕분에 나도 모처럼 푹 쉴 수 있었네."
"몸도 불편하신데 이제부터 저와 함께 살아요."

중견그룹 회장과 내연 관계인 이모씨는 여름과 겨울 휴가 기간만 되면 함께 해외 여행을 떠났습니다. 8년 동안 남몰래 회장을 모시면서 해외여행만 20회 넘게 다녔어요.

회장이 마련해 준 오피스텔에서 생활하면서 용돈도 매월 500만원씩 받았는데요. 이씨가 회장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받은 용돈을 모두 합치면 4억5000만원에 달했어요.

회장에겐 아내와 세 명의 딸이 있었지만 아무도 내연녀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회장이 이씨를 오피스텔에 숨겨두고 몰래 만났거든요. 그가 오피스텔을 방문한다는 사실은 운전기사도 알지 못할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관리했죠.

하지만 이씨 입장에서는 회장의 내연녀로 은둔하면서 생활하는 자신의 처지가 항상 불만이었어요. 회장과 정식으로 교제하면서 당당하게 자신의 몫을 주장하고 싶었죠.

"회장님한테 저는 어떤 존재인가요? 그냥 세컨드인가요?"
"서운한 게 있다면 말해보게나.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네."
"그렇다면 따님들에게 교제 동의서를 받아야겠어요. 해주실 수 있죠?"

며칠 후 회장은 딸들의 자필로 작성된 교제 동의서를 이씨에게 내밀었어요. 동의서에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씨와의 교제를 인정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어요.

회장의 마음을 확인한 이씨는 지극 정성으로 회장을 모셨어요. 건강이 점점 악화하던 회장의 간병인 역할까지 전담하며 헌신적으로 보살폈죠.

오피스텔 생활이 불편했던 회장과 이씨는 아파트까지 장만해 함께 지냈는데요. 아파트는 이씨 명의로 계약했지만 구입대금 3억8500만원은 회장의 통장에서 이체됐어요.

하지만 회장은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어요. 회장 유족들은 1년 만에 상속세 조사를 받았고 국세청은 회장이 생전에 이씨에게 계좌이체했던 8억3500만원을 포착했어요.

결국 이씨는 2억8500만원의 증여세를 추징당했어요. 이씨는 국세청을 찾아가 회장과의 사실혼 관계를 주장했고 딸들이 작성한 자필 동의서와 운전기사의 사실확인서, 출입국 기록 등을 제출했어요.

"국세청입니다. 회장님에게 교제 동의서를 써준 사실이 있습니까?"
"어머니가 살아계신데 그런 동의서를 써줬다는 게 말이 되나요?"

국세청 직원의 전화를 받은 회장의 딸들은 펄쩍 뛰었어요. 회장은 가족들과 한 집에서 함께 살았고 이씨와의 내연 관계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죠. 동의서는 이씨가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라며 강하게 부인했어요.

회장이 사망하기 전까지 10년간 모시던 운전기사의 반응도 마찬가지였어요. 이씨가 살던 오피스텔에는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고 진술했는데요. 이씨 명의로 된 아파트에는 가본 적이 있었지만 회장과 사실혼 관계였는지 여부는 알 수 없는 일이라며 선을 그었어요.

국세청은 회장 유족과 운전기사의 진술을 토대로 재검토한 결과, 이씨의 주장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어요. 회장과는 주민등록상 주소지도 달랐고 사실혼 관계를 인정할 근거도 전혀 남아있지 않았어요.

국세청이 여러 차례 소명 기회를 부여했지만 이씨는 아무런 증빙을 제출하지 못했어요.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에서는 사망하기 2년 전부터 병원비와 간호수발비로 1억1800만원이 지출됐고 해외여행경비는 3000만원이 인출된 것으로 밝혀졌어요.

이씨가 회장으로부터 받았던 8억3500만원은 증여가 맞다는 결론이 내려졌죠. 하지만 이씨는 국세청의 처분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그래서 감사원에 심사청구를 제기해 증여세 과세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요구했어요.

"회장님한테 본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얼핏 들어보긴 했지만 실제로 만난 적은 없어요."
"법률적 배우자가 있으면 누구도 사실혼 관계가 될 수 없습니다."

감사원이 심사해보니 이씨의 주장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어요. 회장이 이씨와 만날 당시 법률적으로 혼인 상태였던 본처가 있었다는 사실인데요. 민법(제810조)에는 이미 배우자가 있을 경우 중혼(重婚)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씨의 사실혼 주장은 성립될 수 없었어요.

결국 사실혼 청산에 따른 위자료라는 이씨의 주장은 인정받을 수 없었죠. 궁지에 몰린 이씨는 자신이 받은 용돈이 생활비와 진료비 등 실비변상 성격이 있었다고도 해명했는데요. 이미 거액의 진료비와 여행경비가 회장 명의로 인출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판결을 뒤집지 못했어요.

■ 절세 Tip
타인으로부터 재산을 이전받아 재산가치를 증가시킨 경우 증여세를 과세한다. 다만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치료비와 피부양자의 생활비는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민법상 부양의무는 직계혈족과 배우자에 한해 부여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지출한 생활비는 증여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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