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을 둘러싼 납세자들의 사연은 각양각색입니다. 억만장자가 탈세나 체납을 저지르고, 멀쩡한 부부가 세금을 피하기 위해 위장이혼을 감행하기도 하죠. 뒤늦게 세무당국에 덜미라도 잡히면 더 큰 목소리로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탈세인 줄 몰랐다고 하고, 진짜로 헤어졌다고 우깁니다. 단지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지어낸 얘기일까요. 아니면 세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일까요. 막장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비즈니스워치]
"회장님을 사랑했습니다. 우린 쌍둥이 아들까지 낳았어요. 회장님은 본처와 이혼하고 오신다고 했는데, 계속 미뤘어요. 알고 보니 나이 어린 다른 여자와도 바람을 피웠더군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죠.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해서 헤어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여자를 울린 회장은 2000년대 초반 온 나라를 뒤흔든 '○○○ 게이트'의 주인공입니다. 그들은 1995년에 처음 만나 2년 후부터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여자는 회장이 게이트 사건으로 힘든 시기에도 옆에서 성심껏 내조했고, 부부의 연을 맺기 위해 노력했죠.
하지만 두 사람은 끝내 법적 부부가 될 수 없었는데요. 회장에겐 이미 본처가 있었고, 회사 여직원과도 내연 관계였습니다. 여자의 믿음은 배신감으로 바뀌었고, 회장과의 이별을 선언합니다. 물론 아이들의 양육비와 학자금, 성년 이후의 가계정착금까지 다 받고 말이죠.
이별 후엔 초고층아파트
거액을 손에 쥔 여자는 2009년 서울의 초고층 아파트 두 채를 전세로 계약합니다. 전망 좋은 41층(177㎡)과 42층(92㎡) 아파트였는데, 아이들과 함께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죠.
새로 이사간 아파트에는 회장도 자주 찾아왔습니다. 자신의 아이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여행도 함께 다니면서 아버지의 도리를 다했는데요. 그러다가 국세청의 레이더망에 걸렸습니다.
국세청은 지난해 초 여자를 상대로 자금출처 조사에 나서면서 세금을 추징했습니다. 회장한테 거액의 전세자금을 받았으니, 증여세를 내라는 겁니다. 하루 아침에 수억원의 세금을 통보받은 여자는 억울하다며 펄쩍 뛰었습니다.
계약금은 빌렸고, 잔금은 위자료
여자는 아파트 전세 계약금을 회장으로부터 빌린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원래 여자가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인데, 회장의 회사에서 대신 갚아줬다는 얘깁니다. 전세 잔금도 회장과의 사실혼 관계를 청산하면서 받은 자녀양육비와 위자료로 냈다고 항변했습니다.
세법에선 이혼할 때 받는 위자료에 대해 증여세를 물리지 않고 있는데요. 비록 사실혼이라도 명백한 혼인 관계만 입증하면 증여세를 피할 수 있죠. 하지만 여자가 간과한 것은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민법상 중혼이 금지되기 때문에 유부남이었던 회장과는 사실혼이 성립되지 않은 겁니다.
사실 두 사람은 헤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파트 입주자 카드에는 회장과 여자, 자녀 2명이 모두 적혀있었고 지난해 초까지도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죠. 2010년에도 세무조사를 받았는데, 여자는 두 사람이 계속 만나고 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내연녀가 또 있다"
국세청이 두 사람의 이별을 믿지 못하자 여자는 새로운 사실을 털어놨는데요. 회장에게 다른 내연녀가 있었다는 겁니다. 차마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았는데, 사실 회장은 2007년부터 여자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회장은 자신의 회사에서 근무하던 30대 초반의 여직원과 내연관계였습니다. 그러니까 본처 말고도 내연녀가 두 명이 더 있었다는 거죠. 여직원과의 불륜은 어쩌면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덜미를 잡혔습니다.
여직원에게 푹 빠진 회장은 그녀 명의로 전세 아파트까지 내주고 왕래했는데요. 나중에 사이가 틀어지자 아파트를 회장 명의로 돌려놓다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직원이 아파트를 못 내놓겠다고 버틴 겁니다. 결국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까지 불거졌고, 전세금의 절반을 돌려주라는 조정이 성립됐습니다. 이때 내막을 알게 된 여자도 회사 여직원보다 더 많은 위자료를 받아낼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냥 세금 다 내라"
여자는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온갖 변명을 늘어놨지만, 국세청의 과세 처분을 되돌릴 순 없었습니다. 납세자 권리 구제기관인 조세심판원도 과세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는데요. 여자의 증언이 일관성도 없고, 과세를 뒤집을 증거도 없었다는 얘깁니다.
실제로 여자는 회장으로부터 전세 계약금을 빌린 계약서나 이자 지급내역 같은 증빙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회장은 매월 여자에게 생활비를 송금해줬고, 두 사람이 계속 만남을 이어갔기 때문에 위자료로 보기도 어려웠습니다.
*재산의 증여 추정
상속세및증여세법(제45조)에 따르면 직업이나 연령, 소득에 비해 과도한 재산을 취득할 경우에는 취득자금을 증여받은 것으로 추정해 증여세를 과세한다. 국세청은 여자가 거액의 초고층 아파트 두 채를 자력으로 취득하지 못했다고 판단해 증여세를 추징했다. 만약 여자에게 스스로 아파트 전세자금을 충당할 능력이 있었다면, 소명을 통해 증여세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