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지막 상차림
"오늘 왜 이렇게 반찬이 많아? 누구 생일이야?"
"엄마는 어디 좀 다녀올테니까 밥 잘 챙겨먹고 있어."
"멀리 가는거야? 언제 오는데? 엄마 지금 우는거야?"
그날 엄마는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곱게 화장한 얼굴로 근사한 저녁상을 준비했는데요. 우리 삼남매가 식사를 마치고 잠이 들자, 엄마는 밤늦게 어디론가 나가버렸어요.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삼남매는 아빠와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어요. 아빠는 재혼도 하지 않고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헌신했죠. 가끔씩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기도 했지만, 아빠 덕분에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었어요.
엄마는 그날 이후로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우리가 결혼식을 했을 때도 엄마는 없었어요. 오빠가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도 엄마는 연락두절 상태였어요.
#이혼같지 않은 이혼
"아빠! 가족관계등록부에 엄마가 아직도 있어요."
"이상하구나. 그때 분명히 이혼했었는데."
"이혼 신고가 제대로 되지 않았나봐요."
"그냥 내버려 두자. 네 엄마 꼴도 보기 싫다."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가족관계등록부를 확인했는데, 한동안 잊고 지냈던 엄마의 이름이 있었어요. 하지만 아빠는 엄마와 이혼 문제로 다시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연락을 하려고 해도 엄마의 전화번호나 주소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그런데 아빠가 집을 팔면서 문제가 생겼어요. 아빠는 결혼 전부터 갖고 있었던 집 한 채를 팔았는데요. 1세대1주택자였기 때문에 양도소득세를 낼 필요가 없었어요. 그래서 양도세 비과세 신고를 했는데, 1년 후 세무서에서 과세 통지서가 도착했어요.
세무서에선 1세대2주택이니까 양도세를 과세하겠다고 했어요. 알고 보니 30년 전에 집을 나간 엄마가 경기도에서 집을 한 채 보유하고 있었어요. 아빠와 엄마가 법률적으로 혼인 상태였기 때문에 같은 세대로 보고, 1세대2주택 과세가 이뤄지게 됐어요.
#아내를 믿지 마세요
"30년 동안 이혼이 된 줄 몰랐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아이 엄마가 이혼신고를 한다고 해서 그대로 믿었어요."
"서류만 떼어봐도 금방 알 수 있잖아요."
"제가 초등학교밖에 안 나와서 그런 걸 잘 모릅니다."
사실 아빠와 엄마는 30년 전 성격차이로 이혼에 합의했고, 법원을 찾아가 협의이혼 결정까지 받았어요. 엄마는 그 결정문을 가지고 직접 이혼신고를 하겠다며 집을 나갔죠. 그런데 엄마가 이혼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고, 법원에 다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어요.
법원에서는 아빠의 주소에 대해 보정 명령을 내렸는데 엄마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어요. 이혼소송은 각하 판결이 내려졌고 아빠와 엄마는 이혼을 못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30년 동안 별거 상태였지만 혼인은 계속 유지된 것이죠.
이런 속사정을 세무서 직원에게 털어놨지만, 과세 처분은 되돌릴 수 없었어요. 세무대리인을 찾아가 상담을 받아봤더니, 때마침 이혼 관련 세법이 개정됐다며 희망을 주더군요. 아빠와 엄마처럼 사실상 이혼 상태라면 각각 다른 세대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였어요.
#거꾸로 보는 세법
"이번에 세법이 어떻게 바뀌었는데요?"
"여기 보세요. 법률상 이혼했지만, 생계를 같이 하면 사실상 이혼이 아니라고 나와있죠."
"그러면 아빠와 엄마는 반대로 해석하면 되는 건가요?"
"그렇죠. 법률상 이혼하지 않았지만, 생계를 따로 하면 사실상 이혼이잖아요."
세무대리인의 해석은 그럴듯했지만, 국세청은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세법은 엄격해석 원칙에 따라 확대해석이나 유추해석을 금지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는데요. 국세청은 세법에 규정되지도 않은 내용을 마음대로 해석하지 말라고 경고했어요.
조세심판원도 아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심판원은 "부부가 이혼절차 없이 사실상 별거해도 법률상 부부관계는 여전히 유지된다"며 "배우자와 동일한 주소에서 생계를 같이 하지 않았다고 해도 1세대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어요.
아빠가 원했던 1세대1주택 비과세는 물거품이 됐고, 국세청이 1세대2주택으로 과세한 처분은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었어요. 아빠는 일단 양도세를 내고, 행정소송을 내야할지 세무대리인과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 절세 Tip
2018년 12월 31일 개정된 소득세법에는 위장이혼을 막기 위해 1세대로 보는 배우자를 명확히 규정했다. 법률상 이혼을 했으나 생계를 같이 하는 등 사실상 이혼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관계에 있는 사람도 배우자로 판단한다. 이혼하고 나서도 같은 집에 살거나 경제적으로 분리되지 않으면 1세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1세대를 구성한 부부가 각각 집을 소유하게 되면 다주택자가 되기 때문에 양도세 측면에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